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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유소년 축구의 방향을 묻다-마지막 초·중등 왕중왕전

작성일 2017.12.15

조회수 6348
마지막 초등 축구리그 왕중왕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울산현대 U-12 마지막 초등 축구리그 왕중왕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울산현대 U-122009년 출범해 9년 동안 수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던 초·중등리그 왕중왕전이 올해를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내년부터는 연말의 왕중왕전 없이 주말리그만 진행된다. 초·중등리그가 새로운 변화 앞에 섰다.

2009년 출범한 왕중왕전은 이를 거쳐 간 많은 이들의 추억 속에 남아있다. 지난 5월 FIFA U-20 월드컵에서 활약한 백승호와 이승우는 각각 2009년과 2010년, 대동초 소속으로 초등리그 왕중왕전에 참가해 ‘될성부른 나무의 떡잎’을 보였다. U-18 대표팀 멤버인 전세진은 2010년 부양초, 2014년 매탄중 소속으로 초·중등리그 왕중왕전 우승컵을 모두 들어올렸다.

11월 5일 강진에서는 2017 대교눈높이 전국 중등 축구리그 왕중왕전이 막을 내렸다. 우승컵의 주인공은 매탄중(수원삼성 U-15)이었다. 2014년 왕중왕전 우승을 차지한 매탄중은 3년 만에 두 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왕중왕전 역사상 최초로 2회 우승을 차지한 팀이 됐다. 말 그대로 역사, 다시없을 기록이다. 올해를 끝으로 왕중왕전이 폐지되기 때문이다.

일주일 뒤 구미에서는 2017 대교눈높이 전국 초등 축구리그 왕중왕전이 그 끝을 알렸다. 우승은 울산현대 U-12였다. 울산현대 U-12의 왕중왕전 첫 우승, 그리고 마지막 우승이다. 초등리그 왕중왕전 역시 올해가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을 함께한 이들은 저마다의 감회와 소회로 왕중왕전과 작별을 고했다. 초등리그 왕중왕전의 마지막 우승컵을 들어 올린 박창주 울산현대 U-12 감독은 “왕중왕전은 하나의 축제나 마찬가지다. 최선을 다해 한 해 성과를 낸다는 점에서 계속 이어갔으면 했는데 올해를 끝으로 폐지돼 아쉽다”고 말했다.

김영진 오산중(FC서울 U-15) 감독은 중동중 코치로서 초대 왕중왕전에 참가한 이래 올해 마지막 왕중왕전까지 꾸준히 왕중왕전과 함께 했다. 김 감독은 “지도자 생활을 하며 많은 추억이 담긴 대회다. 올해를 마지막으로 없어진다는 게 한편으론 아쉽지만, 그 취지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초·중등리그 왕중왕전이 폐지된 배경은 무엇일까?

- 상급학교 진학 위에 팀 떠나는 선수들...일선 지도자들 어려움 호소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7월 이사회에서 초·중등리그 왕중왕전 폐지를 결정했다. 그동안 남자 초등부와 중등부는 3월부터 10월까지 권역별 리그를 갖고 11월에 왕중왕전을 개최해 왔지만, 내년부터는 왕중왕전 없이 리그만 진행된다.

이는 일선 지도자들의 지속적인 건의가 반영된 결정이다. 2~3년 전부터 일선 지도자들 사이에서 왕중왕전 폐지론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 이유는 졸업반 선수들의 진학 문제였다. 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원하는 상급학교로 진학하기 위해 원서 접수 이전에 원하는 상급학교가 있는 지역으로 거주지를 옮기고 전학을 가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왕중왕전이 열리기 전에 이미 팀의 주력인 졸업반 선수들이 팀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배성언 대한축구협회 경기운영팀장은 “주력 선수들이 빠져나가 정상적인 전력으로 왕중왕전을 치르지 못하는 현상을 막기 위해 처음에는 대회 규정을 통해 전학 간 선수들이 원소속팀에서 뛸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것이 대한체육회 규정과 상충되면서 3년 전부터는 원소속팀 출전 규정을 폐지했다. 그 이후로 일선 지도자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방 학원팀일수록 전력 누수 현상이 심했다. 전체 팀 수 중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 선수들은 비교적 지역 내 상급학교 진학이 용이하지만, 지방 선수들은 축구부가 있는 상급학교를 찾아 전학을 가는 일이 잦다. 지방 학원팀 지도자들은 왕중왕전에서 정상적으로 팀을 운영하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왕중왕전 폐지를 건의했다. 마지막 중등 축구리그 왕중왕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매탄중 마지막 중등 축구리그 왕중왕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매탄중- 성적중심주의 타파 vs 토너먼트 폐지가 능사는 아냐
왕중왕전 폐지론이 힘을 얻은 또 한 가지 이유는 성적중심주의 타파다. 왕중왕전에서의 토너먼트 승부가 어린 선수들에게 과도한 압박감을 주고 팀 간의 과도한 경쟁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당초 주말리그가 출범하면서 지향점으로 잡은 건 ‘즐기는 축구 문화 정착’이었다. 기존의 토너먼트 대회가 단기간에 모여 거의 매일 같이 경기를 치르는 서바이벌 게임이라는 점, 이와 같은 경쟁이 유소년 선수들의 혹사와 승리만을 위한 축구를 야기한다는 점에서 문제의식이 공감을 얻었다.

주말리그는 장기간의 꾸준한 경기를 통해 선수들의 경기력을 향상시키고 당장의 승부보다는 즐기는 축구를 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듦으로써, 한국축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는 포부로 시작됐다.

9년의 시간이 흐르며 주말리그는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지만, 왕중왕전의 존재에는 물음표가 붙었다. 기존에 치러지는 방학 중 전국대회에 왕중왕전까지 더해지면서 비용 문제와 이로 인한 학부모의 부담 가중도 지적됐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2017년 신년사에서 “올바른 시스템과 축구 문화를 정착시키고 축구 산업을 확대하기 위해, 흔들림 없이 변화와 개혁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히며, 초·중등 왕중왕전 폐지 추진을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왕중왕전 폐지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도 새겨들어야 한다. 단기 토너먼트를 위해 짧은 기간 동안 집중력 있게 훈련하고 경기하는 것이 오히려 리그를 치르는 것보다 선수의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견해다. 동아대학교에서 13년 간 선수들을 가르치다 최근 협회로 들어온 최영일 부회장은 “어린 나이에 과도하게 많은 경기를 치르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왕중왕전처럼 전국의 강팀이 한데 모여 실력을 겨룰 수 있는 대회는 아이들의 실력 향상에 분명이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 상급학교 진학으로 인한 선수 부족 등의 문제를 관계 부처와 원만히 해결한다면 왕중왕전이 다시 부활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개인적인 의견을 드러냈다.

- 협회의 철학이 일선에 전파되는 것이 관건
대한축구협회는 내부 임원회의와 초중고축구발전협의회와의 논의를 거쳤다. 초중고축구발전협의회는 유소년축구연맹, 중등축구연맹, 고등축구연맹과 각급 지도자 대표, 각 시도협회 관계자가 모인 협의체다. 논의 결과를 대한축구협회 이사회에 보고해 지난 7월 최종 결정이 내려졌다. 초·중등리그 왕중왕전은 폐지하고, 고등리그 왕중왕전은 존속키로 한 것이다. 고등리그의 경우 대학 진학에 대회 실적이 필요한데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교에 입학하기 때문에 전학으로 인한 전력 누수가 없다는 점에서 초·중등리그와는 차이가 있다.

물론 이번 결정이 모든 구성원에게 만족감을 줄 수는 없다. 선수들의 진학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클럽으로서는 학원팀과 경쟁하며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전국대회가 하나 사라진 셈이기 때문이다. 기존에 왕중왕전에서도 팀을 정상적으로 운영해온 클럽들은 왕중왕전 폐지에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성적중심주의 타파라는 대의에는 공감의 목소리와 회의적 시선이 공존했다. 김영진 오산중 감독은 “어린 나이의 선수들에게는 성적보다 선수 개개인의 성장이 중요하다. 하지만 대회가 많다보면 대회에 선수들을 맞출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선수 성장을 위해선 훈련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며 왕중왕전 폐지가 성적보다 성장을 추구하는 축구문화의 정착으로 이어지기를 기도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도자는 “즐기는 축구 문화의 정착이 리그냐 토너먼트냐의 논쟁으로 한 번에 해결될 리가 없다. 대한축구협회가 세운 가치와 철학이 얼마나 깊숙이 일선까지 전파되느냐가 관건이다. 앞으로 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이 글은 대한축구협회 기술리포트 <ONSIDE> 12월호 'CHECKPOINT' 코너에 실린 기사입니다.

글=권태정
사진=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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