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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PECT] 공감능력을 키우자

작성일 2018.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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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서 승리의 가치는 구성원 모두가 정정당당할 때 더 빛을 발한다. 정정당당함은 서로간의 존중을 바탕으로 나온다. 대한축구협회가 시행하는 리스펙트(RESPECT) 캠페인의 궁극적인 목적은 존중의 의미를 되새기고 실천하는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최근 한국 사회 전반으로 확산된 ‘미투운동(#MeToo)’에 대해 살펴보고, 축구계 내 성폭력 문제에 대해 돌아본다.

지난해 11월, 전 미국여자축구대표팀 골키퍼 호프 솔로가 제프 블래터 전 FIFA 회장의 성추행을 고발했다. 블래터가 FIFA 회장으로 재직 중이던 지난 2013년 1월 발롱도르 시상식에서 솔로의 엉덩이를 만졌다는 주장이었다.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폭력을 피해 여성들이 차례로 폭로하면서 할리우드발 ‘미투운동(#MeToo)’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을 때다. 이후 스포츠계에서도 속속 자신이 경험한 성폭력을 고발하는 운동이 이어졌다.

우리나라의 ‘미투운동(#MeToo)’은 지난 1월 말 서지현 검사가 안태근 전 검사장으로부터 당한 성추행을 고발한 것을 시작으로 그 동력을 얻었다. 이에 앞서 2016년부터 SNS를 통해 진행된 ‘#OO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은 ‘미투운동(#MeToo)’이 힘을 낼 수 있게 한 발판이 됐다. 한국 스포츠계에서도 일찍이 성폭력 고발이 있었다. 테니스 선수로 활동했던 김은희 씨가 초등학생 시절 자신을 가르치던 코치의 성폭행을 2016년 고발해, 사건 발생 후 15년 만에 처벌을 이끌어냈다. 축구계에서는 아직까지 겉으로 드러난 폭로는 없었지만, 우리나라의 성폭력 신고율이 10퍼센트 안팎에 불과한 것에 비춰본다면 물밑에 감춰졌거나 묵인된 성폭력 경험들이 존재 할 수 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미투운동(#MeToo)’의 ‘미투’는 흔히 ‘나도 당했다’로 해석되지만, 그보다 ‘나도 말한다’ 또는 ‘나도 고발한다’로서의 의미가 크다. 주변의 시선과 사회적, 조직적 위계로 인해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들이 두려움을 깨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싸움에 함께 하겠다는 연대의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대의 가능성이 적은 곳일수록 ‘미투운동(#MeToo)’은 지속적으로 이뤄지기 어렵다. 내 목소리를 들어줄 사람, 내 손을 잡아줄 사람이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미투’의 용기가 생긴다. 다분히 남성중심적인 축구계 역시 ‘미투운동(#MeToo)’이 나타나기 어려운 구조다.

드러나지 않았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다. 다수의 여성 축구인들은 조심스럽게 성폭력적, 성차별적 경험을 공유한다. 대부분 ‘당시에는 (성폭력이란 것을) 인지하지 못했지만’, ‘당시에는 (성폭력인지 아닌지) 헷갈렸지만’, ‘당시에는 당황해 그냥 지나쳤지만’으로 시작하는, 돌이켜보면 명확한 기억들. 앞서 언급한 테니스 선수 출신 김은희 씨 역시 초등학생 시절 1년 간 네 차례의 성폭행 피해를 입었으나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했고, 성인이 된 후에야 피해사실을 입증한 경우다. 테니스 대회에서 우연히 가해자를 만나, 그가 여전히 어린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용기를 낸 것이다.

김은희 씨의 사건은 강력 범죄에 해당하지만, 우리 곁에 공기처럼 가까이 있는 성폭력도 많다. 특히 성희롱은 다른 성폭력에 비해 가볍게 여겨지는 경우가 많아 그 문제성을 놓치기 쉽다. 성희롱은 성적인 말이나 행동으로 상대방에게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의도가 어떻든 상대방이 성적 수치심이나 불쾌감을 느꼈다면 성희롱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 판단 기준이 주관적이라는 이유로 성희롱은 종종 짓궂은 농담이나, 친밀감의 표현 등으로 치부되기 일쑤다. 오히려 문제성을 지적하는 사람에게 예민하다, 유별나다는 꼬리표가 따라붙기도 한다.

성희롱을 없애는, 성희롱을 하지 않는 방법은 사실 매우 간단하다. 바로 공감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젠더 감수성 또는 인권 감수성이라는 조금은 거창한 표현도 있지만, 간단히 이야기하면 공감능력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에 공감하는 것, 그러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어떤 말이나 행동을 했을 때 상대방이 어떻게 느낄 것인가를 미리 생각해 보는 것은 인간관계에서의 기본적인 예의이기도 하다. 결국 존중, 리스펙트(RESPECT)의 문제다.

가령 “XX씨, 오늘 예뻐 보이네. 애인 만나러 가나봐?” 또는 “그렇게 입으니 보기 좋네. 계속 그렇게 입고 다녀” 따위의 발언이 성희롱이라는 지적에 “그건 칭찬이지, 성희롱이 아니다”라고 항변하는 사람은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다. 단순히 음란한 말 뿐만 아니라, 외모에 대한 평가나 성적인 사생활에 참견하는 것도 성희롱에 해당한다. 판단이 어렵다면,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다른 사람에 의해 품평 당해야 하고 원치 않게 사생활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 상대방의 불쾌함에 대해 공감해보자.

최근 ‘미투운동(#MeToo)’이 활발해진 이후로는 새로운 종류의 문제 발언도 생겨났다. “이것도 미투 당하는 거야?” 또는 “너도 나 미투할 거야?” 따위다. 이런 발언들은 성폭력 피해자들의 용감한 고백이자 투쟁인 ‘미투운동(#MeToo)’을 농담 소재로 쓴다는 것 자체로도 문제적이지만, 이런 발언을 통해 상대방이 직전의 성희롱 발언을 지적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해버린다는 점에서 매우 저열하다. 내 말을 상대방이 성희롱으로 느낄까봐 걱정이 된다면, 그 말은 안 하면 된다. 정말 쉽지 않은가.

* 이 글은 대한축구협회 기술리포트 <ONSIDE> 4월호 'RESPECT' 코너에 실린 기사입니다.

글=권태정
사진=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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