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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EGEND 4] 1960년대 명수비수 김정석

작성일 2017.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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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석 원로가 대한축구협회와의 인터뷰에서 선수 시절을 되돌아보며 생각에 잠겨있다. 김정석 원로가 대한축구협회와의 인터뷰에서 선수 시절을 되돌아보며 생각에 잠겨있다.대한축구협회가 한국 축구사에 공적을 남긴 인물을 릴레이 인터뷰한다. 네 번째 시간으로는 1960년대 이름을 날린 수비수 김정석 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두 차례 아시아 올스타(1966, 1968년)에 선정될 정도로 활약이 뛰어났던 그의 축구 인생을 들여다보자.

- 가족관계는.
가족들은 1.4 후퇴 때 다 피난 내려왔어요. 형제는 1남3녀이고 다 살아있어요. 저는 외아들이죠.

- 축구를 시작하게된 계기는.
공부도 그렇게 뒤떨어져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초등학교 때 운동을 해보니까 소질이 있다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축구도 해보고, 육상도 해보고 여러가지를 해봤어요. 그중 재밌는게 축구였어요.

- 처음부터 포지션이 수비수였나.
초등학교 때는 라이트윙이었어요. 대전중학교 때도 내내 라이트윙을 했죠. 그런데 배재고 오니까 서울이라 그런지 선배 선수들이 공격에는 딱 배치가 돼있더라고요. 그래도 내가 곧잘 해보였는지 썩히긴 아깝다 하면서 풀백을 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고등학교 때 라이트 풀백을 보고, 대학 가서도 라이트 풀백을 보다가 대표 선수도 라이트 풀백으로 간 거죠

- 당시 고려대학교에 입학하게 된 이유는.
그때도 연세대와 고려대는 체육특기자로 몇 사람을 뽑았어요. 내 기억에는 연세대에 입학원서를 내러갔다가 원서가 마감이 됐다고 해서 안 됐어요. 그런데 고대를 가니 받더라고요. 마감을 똑같이 하지 않았나 봐요. 그래서 고대로 갔죠.

- 당시에도 연세대와의 정기전 열기가 뜨거웠나.
막 노래 부르고 응원하지요. 뭐 대단해요, 고연전 할 때는. 근데 외국에 나가서 하는 국제경기는 대비를 하잖아요. 합숙도 한 달 이상 하고 훈련 많이 하니까 자기 실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데 고연전은 훈련기간이 짧아요. 그러니까 오히려 더 긴장되고 경기하기 힘들었어요. 1959년 제1회 아시아청소년대회 우승 당시의 모습. 트로피를 든 선수가 김정석이다. 1959년 제1회 아시아청소년대회 우승 당시의 모습. 트로피를 든 선수가 김정석이다.- 1959년 제1회 아시아청소년대회를 회고한다면. 당시 주장으로 참가해 우승했다.
(결승전에서) 우리가 경기 시작한 지 20분 만에 말레이시아한테 한 골을 실점했어요. 운동장에 고함소리가 귀가 멍할 정도로 났어요. 소리 지르고 난리 났죠. (홈 관중들이) 이제 우승 다 됐구나 하고서 말이죠. 내가 주장인데 하프타임 때 “야, 우리가 투지로 달라붙으면 이길 수 있어. 한번 해보자”고 정신 무장을 했어요. 그때 박규정 감독님도 “고추장 먹고 김치 먹은 사람은 강해. 이길 수 있다”고 하는 게 기억 나요.
정신을 재정비하고 후반에 들어가서 우리가 15분 만에 한 골을 만회해 1-1이 됐죠. 그리고 경기 끝나기 전 3분 남기고 이순명이 코너킥을 찼는데 키큰 사람이 있어야 하니 나보고 앞으로 나가라고 해서 나갔어요. 코너킥을 차는데 하얀볼이 날아와요. 야간경기라 공이 정말 하얗게 보이는데 내가 머리가 터져라 하고 헤딩을 냅다 박았는데 땅으로 박혔어요. 그게 상대 수비수 맞고 튀어나온 걸 (이순명이) 탁 잡고 가볍게 싹 올리는데 이걸 마이너스킥(오버헤드킥)을 찼는데 이게 반대편 코너로 그냥 그림같이 들어가더라고요. 그래서 서로 껴안고 난리가 났죠.

- 1959년 메르데카배에 A대표팀으로 참가했다.
1959년 4월에 말레이시아에서 아시아 청소년 대회에 참가하고 우승했죠. 그리고 3개월 후에 2회 메르데카배에 초청돼 갔죠. 그때 대표팀 선발 시합을 하는 거예요. 우승하고 귀국한 뒤 박규정 감독, 이영창 주무님이 ‘이번에 가거든 정신 바짝 차리고 몸관리 잘해’라고 해서 ‘네’ 그랬더니 ‘김정석, 조윤옥은 이번에 대표팀에 발탁시킬거야' 그러더라고요. 나는 농담으로 들었어요.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있었거든요. 최정민, 우상권, 김찬기 등 우리보다 나이가 아홉 살, 열 살 많은 사람들이 진영하고 있는데... 젊은 선수들을 귀엽게 보고 이야기해주나 보다 싶었다. 6월 말 선발 시합에 30명을 뽑았는데 나, 조윤옥, 이순명까지 세 명을 넣었어요. 그래서 두 팀으로 나눠 선발시합을 했는데 그 세 명을 진짜 다 대표팀에 넣어주더라고요. 그래서 ‘아, 그 말씀이 맞구나’ 했죠.

- 1960 로마 올림픽 아시아 예선 때 대만에 몰수패를 당했다.
게임이 막상막하였어요. 자유중국(대만)이 강하고 스타 플레이어가 많았어요. 요탁연이니, 황지광이니 아주 잘 하는 선수들이 있었죠. 그때 함흥철 선배가 골키퍼였는데 우리 수비수 누군가가 태클이 심했는지 페널티킥을 줬어요. 상대가 볼을 딱 놓고 찼는데 함흥철이 딱 잡아서 ‘아, 이제 살았다’ 싶었는데 주심이 다시 휘슬을 휙 불고 어게인 하더라고. 그래서 흥분하고 난리가 났지. 함흥철 씨가 얼마나 대단해요. 차태성, 함흥철 선배님들이 성격이 굉장히 과격한 사람들인데 막 항의를 하는 거야. 그러면서 심판을 떠밀며 똑바로 하라고 했는데 그걸 과격하게 때렸다고 해서 FIFA에 보고를 했나봐요. 그래서 우리가 탈락됐죠.

- 1962년 대표 선수단 밀수 사건을 회상한다면.
한국이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아닙니까. 우리 선수들도 참 어려울 때예요. 축구화도 우리 돈으로 사서 쓰고, 원정 갈 때쯤 돼야 여관 가서 한 달 정도 합숙하고, 유니폼을 사러 다니고 했는데 지금은 얼마나 좋아요. 선수들이 외국을 갔다 오면 홍콩, 싱가포르 면세점에서 경제에 밝은 사람은 물건 몇 개를 사와요. 그래서 팔면 용돈도 생기고, 결혼한 사람은 도움이 되잖아요. 그렇게 습관적으로 몇 사람들이 했어요. (나는) 우리 아버지께서 여유있게 장사를 해서 용돈이 궁해서 그러진 않았지만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하게 됐죠. 우린 철이 없었어요. 이거 가져다 몇 개 팔아서 용돈이나 쓰자고 생각했죠. 친구들 만나서 한참 그럴 때잖아요. 20대 중반도 안 될 때였으니 철 없을 때죠. 지금 생각하면 웃기는 얘기죠.

-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는 충격패를 당하며 예선에서 탈락했다.
체코한테 만회골을 넣었는데 1-3으로 졌어요(실제 1-6 패). 브라질한테도 하나도 못 넣고 0-2로 졌죠(실제 0-4 패). 아랍(현 이집트)은 센 팀도 아니였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마지막 쯤에 선수들이 기력이 다 빠졌는지 뛰지를 못했어요. 그래서 그때 아주 기록(0-10 대패)에 남았잖아요.

- 1966년, 아시아축구연맹에서 주관하는 올스타전에 참가했다.
아시아축구연맹이 말레이시아에 있었습니다. 라만 수상이 대단했죠. 그때 메르데카배하고 아시아에서 국제대회를 하면 아시아에서 베스트 11을 뽑습니다. 그러면 각국 축구협회에서 뽑혔다고 통보하고, 그쪽 신문에도 났죠. 그쪽에서 축구팬들을 확보하기 위해 1년에 한번씩 초청을 해요. 왕복비행기와 체제비를 지원해 초청했어요. 그래서 영국 프로팀(아스널)과 붙었죠.

- 올스타전에서 유럽 선수들과 경기를 해본 소감은.
아무리 해도 개인적으로 훈련만 잘 시키면 아스널이다 뭐다 해도 충분히 대결할 수 있지. 그런데 3~4일 연습하고 경기하니 발이 잘 안맞는 거야. 콤비네이션이 안 되는거지.

- (1970년) 멕시코 월드컵 예선 때 호주에 져 탈락했다.
임국찬 씨가 페널티킥을 놓친 그 대회 맞죠? 페널티킥만 넣었어도 승부가 어떻게 될지 몰랐어. 연습 때 승부차기를 대비해서 서너명 뽑아서 연습시키잖아요. 임국찬이는 연습 멤버에 안 들어갔어요. 그런데 페널티킥을 하니까 김용식 감독이 임국찬을 내보내더라. 아니나 다를까 긴장해서 놓쳤어. 관중 많으면 스트레스 받아요. 아주 강심장이면 모를까. 그래서 공을 약하게 차서 상대가 잡았잖아. 그래서 탈락이 됐죠. 개인적으로 그때는 서른두 살이었는데 경기를 겨우 치렀어요. 체력적으로 피로 회복이 빨리 안 돼요. 그래도 악착같이 치렀죠. 김정석 원로는 국가대표 후배들이 철저한 자기 관리를 할 것을 당부했다. 김정석 원로는 국가대표 후배들이 철저한 자기 관리를 할 것을 당부했다.- 국가대표를 은퇴하며 아쉬움이 많이 남았을텐데.
대표선수를 한 시절은 후회하지 않아요. 후회는 안 하지만 단 하나, 요즘 같은 세월에 배재고 2,3학년쯤 되면 얼마나 좋겠나 하는 생각은 있죠.

- 은퇴 후 은행원 생활을 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나.
중,고등학교 때 책 안 들여다 보고 볼만 찼으면 적응하기 힘들지요. 그래서 내가 대리 때면 차장한테 물어봐서 찍고(일을 처리하고), 그리고 조직 가지고 하면서(상사에게 도움을 받으면서) 업무를 하나하나 내 걸로 만들었어요. 고생 많이 했죠, 뭐.

- 선수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나 경기는.
내 현역때는 제1회 아시아청소년대회 때 역전우승하던 흥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대표팀에서는 64년 도쿄올림픽 때 체코랑 했을 때. 막 ‘그래! 한번 해보자!’ 하는 정신이 무시 못한다고 생각해요. 그때 여한없이 플레이했어요. 마지막으로는 세번째는 한일전. 멕시코올림픽 때 3-3으로 비긴 경기도 대단했어요.

- 젊은 선수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차범근, 박지성, 손흥민 이런 선수들은 정말 좋은 시대 잘 타고났어요. 차범근은 굉장히 성실한 친구이고 내가 알기로는 현역 때도 술,담배 안하고 기독교인이고. 그렇게 건실하게 체력관리 잘 하면서 해야죠. 대표 선수는 한시적으로 하는 거 아닙니까. 10년, 길어야 12년 하는 건데 열심히 해서 이름 내고, 가정의 기초를 잘 닦고, 멋있게 선수생활하다가 사회생활을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정석 프로필>
생년월일 : 1939년생
출신교 : 서울 배재고-고려대-방첩대-대한중석-신탁은행
경력 : U-20 청소년대표(1959년)
1959년 제1회 아시아 청소년대회 우승 당시 한국팀 주장
국가대표팀 수비수(1959~1969년)
1964년 도쿄올림픽, 아시안컵 참가
1966, 1968년 아시아 올스타 선정

정리 = 오명철
사진 = 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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