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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풍운아에서 우승 전도사로 진화한 성한수

작성일 2017.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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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랑축구단 성한수 감독 서울중랑축구단 성한수 감독2016년 10월, 자존심에 상처가 났다.

당시 K3리그 정규리그에서 13위를 기록한 서울중랑축구단(구 서울중랑코러스무스탕)은 14위인 평창FC와 승격 플레이오프 1차전을 치렀다. 이 경기를 승리해야 다음 단계인 승격 플레이오프 2차전 진출이 가능했다.

2017년 K3리그 어드밴스 진출이라는 최종 목표를 건 마지막 싸움이었다. 하지만 중랑은 고군분투 끝에 0-1로 지며 하위리그인 K3리그 베이직 행이 확정됐다. 2차전에 가보지도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굴욕의 날이었다.

2017년 10월, 중랑은 180도로 달라졌다.

정규리그 한 경기를 남긴 현재, 중랑은 12승 3무 승점 39점으로 K3리그 베이직 1위를 달리고 있다. K3리그 어드밴스 12팀과 K3리그 베이직 9팀을 통틀어 유일한 무패 팀이다. K3리그 베이직 우승도 확정적이다. 현재 1위인 중랑과 2위인 시흥시민축구단(승점 36점)의 승점차는 3점. 15일에 열리는 마지막 경기에서 중랑이 패하고 시흥이 이긴다고 해도 골득실이 18이다. 시흥이 마지막 경기에서 18점 차로 이기지 않는 이상 중랑이 우승한다.

팀이 확 달라지는 데는 1년이면 충분했다. 변화의 중심에는 성한수 감독(41)이 있다. K3리그 초보 사령탑이 부린 마법은 놀라웠다.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는 성 감독의 마법이 궁금했다.

목표는 무패 우승
성한수 감독을 만난 날은 K3리그 베이직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를 5일 앞두고서였다. 오전에 훈련을 마치고 왔다는 성 감독의 표정은 밝았다. “이제 남은 한 경기만 잘 마치면 좋겠네요.” 중랑은 15일 평창FC와의 원정 경기를 끝으로 리그를 마감한다.

묘한 인연이다. 중랑은 지난해 이맘때쯤, 평창에 패해 승격 플레이오프에서 무릎을 꿇었다. 이번에는 다르다. 중랑을 이기면 K3리그 베이직 무패 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한다. 이기지 못한다고 해도 K3리그 베이직 우승이 매우 유력하다. 부담은 없지만, 놓치면 안 될 경기이기도 하다.

“선수들에게 매번 운동장 안에서 최선을 다하라고 해요. 한 경기 남은 이번 주에도 똑같은 말을 했죠. 축구선수는 운동장 안에서 최선을 다했을 때 가치가 높아지는 법이거든요. 그렇기에 선수들이 운동장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길 원해요. 무엇보다 개인이 아닌 팀의 일원으로서 그 능력을 보여준다면 더욱 좋겠죠. 선수들도 잘 알고 있을 거예요.”

올해 초 중랑에 부임한 성한수 감독은 선수들의 열정을 현실로 이끌어냈다. “시즌 시작하기 전에 선수들이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올해는 무패로 우승해보고 싶다고요. 처음에는 터무니없다고 생각했죠. 우선 저부터도 K3리그가 처음이니까요.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매 경기 치르다 보니 점점 자신감이 붙었고 목표도 더 확실해지더라고요. 시간이 지날수록 이 목표를 꼭 이뤄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졌죠.” 성한수 감독은 중랑에 부임하자마자 친구처럼 선수들에게 다가섰다. 성한수 감독은 중랑에 부임하자마자 친구처럼 선수들에게 다가섰다.‘치맥’으로 마음을 잡다
물음표가 느낌표가 됐다. 가장 큰 원동력은 분위기였다. 성한수 감독은 부임 후 선수들과 친밀함을 쌓는 데 집중했다.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더 나은 방향을 찾아 팀의 철학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처음에 이 팀에 와서 보니 선수들의 동기부여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더라고요. 이겨도 상위리그로 간다는 보장도 없고, 그렇다고 돈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니잖아요. 성적이 좋은 것도 아니었고요. 한 마디로 목표가 없었죠. 우선은 선수들의 동기부여에 집중했어요. ‘운동장에서 최선을 다하면 누군가가 반드시 너를 지켜볼 것이다’라고 말했죠. 상위리그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을 끊임없이 심어줬어요.”

“가끔은 선수들에게 ‘치맥(치킨과 맥주)’도 사줬죠. 성인이기 때문에 가끔 맥주 한 잔 정도는 마셔도 된다는 생각입니다. 분위기를 단합시키는 데 이보다 더 좋은 건 없죠. 맥주 한 잔 하면서 선수와 코칭스태프 간 허심탄회하게 대화도 하고 그 속에서 우리가 가진 문제점도 발견할 수 있고요.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먼저 다가가는 리더십이 선수들의 열정을 깨웠다. 달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시즌 전 대학팀과의 연습 경기에서 연달아 이기며 자신감을 충전했다. 이전까지는 대학팀과의 연습 경기에서 진 적이 많았단다. 시간이 지나니 무패 우승에 대한 꿈이 확실해졌다. “K3리그에는 한 번쯤 실패를 경험해본 선수들이 많죠. 저도 실패를 경험해봤기에 잘 알아요.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가능하다고 믿어요. 언젠가는 K리그 클래식, K리그 챌린지에서 뛰는 선수들보다 더 잘 될 거라는 꿈을 꾸라고 이야기해요.”

위기, 선수들이 스스로 풀었다
훈련법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올해 중랑의 축구 색깔은 수비진의 집중력과 강도 높은 압박으로 대변된다. 마지막 한 경기를 남겨둔 현재 42득점 11실점이라는 좋은 기록을 낼 수 있었던 것도 이와 관련 있다. 중랑의 42득점 11실점은 리그 최다 득점, 최소 실점이다. K3리그 베이직이 총 16경기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놀라운 성과다.

어떻게 훈련했을까? “수비 진영에서 미드필드 걸쳐서 공격진으로 전개될 때는 최대한 간결하게 가라고 주문했어요. 불필요한 터치는 금지시켰죠. 빠르게 공격까지 전개하되 공격으로 올라가고 난 후에는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어요. 선수에게 전권을 맡겼죠.”

빠른 공격 전개와 압박은 강한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처음 중랑에 왔을 때 선수들이 체력적으로 문제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풀어줄 때는 풀어줬지만, 강도를 높여야 할 때는 그야말로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강한 체력 운동을 진행했습니다.”

팀플레이는 성한수 감독이 강조한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팀이 잘 조화될 수 있는 플레이를 추구했어요. 항상 개인이 아닌 팀으로 움직이라고 강조했죠. 선수가 혼자 플레이하는 건 성공 확률이 80% 정도지만, 팀을 이용해 플레이를 하면 100%에 가까워요. 동료를 위해 희생하는 정신이 필요한 이유죠. 이 점을 선수들에게 끊임없이 이야기하다보니 선수들이 잘 따라와 주더라고요. 내가 골을 넣지 못해도 내 일처럼 기뻐해주는 선수들의 모습에 팀이 점점 성숙해졌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내실이 튼튼해지니 위기 앞에서도 강한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 “올 한 해 K3리그 베이직을 치르면서 위기도 많았고, 질 수 있었던 경기도 많았죠. 그런데 선수들이 이 고비를 스스로 넘기더라고요. 자신감을 갖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결과겠죠. 선수들이 스스로 깨우치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이 들더라고요.” 2015년 추계 1, 2학년 축구대회에서 울산대를 꺾고 극적인 우승을 차지한 성한수 감독(당시 호남대). 2015년 추계 1, 2학년 축구대회에서 울산대를 꺾고 극적인 우승을 차지한 성한수 감독(당시 호남대).성숙해질 수 있었던 ‘그 사건’
중랑의 감독으로 알찬 열매를 만들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수차례 롤러코스터를 탔다. 문일고 시절 고교랭킹 톱공격수로 주목받은 성한수 감독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심판폭행사건에 휘말리면서 시련을 맞이했다. 대전에서 열린 전국체전이었다. 경기에 패한 뒤 학부모들이 항의하는 과정에서 성 감독의 아버지가 넘어졌고, 이를 보게 된 성 감독이 심판에게 달려들었다.

3년 출전정지 징계였다. 축구를 그만둬야 할 수도 있는 위기였다. 이후 징계가 1년 6개월로 줄어들었고, 김호곤 감독의 배려로 연세대에 입단하면서 기사회생했지만, 첫 해에는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학부모가 심판에게 항의하는 일도, 선수가 심판에게 달려드는 일도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성한수 감독은 이 일을 계기로 성숙해졌다고 말했다.

“그 때의 사고가 있기 전까지 제 모습을 보자면...그야말로 하늘 높은 줄 몰랐죠. 무조건 내가 최고라는 생각뿐이었고요. 그런데 그 사고가 터지고 축구를 그만둬야 하는 상황까지 몰렸어요. 다행히 김호곤 감독님의 배려로 축구를 계속할 수 있게 됐죠. 어찌됐든 선수는 운동장에서 절대로 폭력을 행사하거나 화를 분출시키면 안돼요. 많이 반성했고, 또 배웠어요. 감독이 되어서도 선수들에게 끊임없이 얘기했어요. 경기력으로만 보여줘야 한다고요.”

1999년에는 드래프트 1순위로 대전시티즌에 입단했다. 이후 2002년 전남으로 이적했고, 2004년까지 리그 59경기 출전에 8골 3도움을 기록했다. 프로 생활 내내 부상이 많은 탓에 기록이 썩 좋지는 않았다. 프로에서 나온 2005년부터는 창원시청에서도 뛰었다. 2007년 8경기 출전을 끝으로 완전히 은퇴했다. 선수 은퇴 후 2007년 한민대(폐교)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성한수 감독은 2012년 12월 호남대로 자리를 옮겨 코치 생활을 이어갔고, 2014년 감독으로 승격해 2년 6개월을 보냈다.

“호남대는 축구 명문팀이잖아요. 부담이 많이 됐죠. 이사장님도 축구에 열정적이시고요. 제가 감독을 하고 난 후에 고학년은 그리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어요. 점점 한계가 느껴질 시점에 저학년이 추계 1, 2학년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죠.” 2015년 강원도 양구에서 열린 KBSN 추계 1, 2학년 대학축구대회는 성한수 감독의 지도자 인생에서 잊지 못할 순간이다.

“대회 직전에 주전 골키퍼가 부상을 당했고 백업 골키퍼도 퇴장 징계로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었어요. 미드필더를 보는 선수가 골키퍼를 봐야 하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매 경기 이기면서 결국 결승까지 올라가더라고요. 결승 상대가 울산대였는데,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울산대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정말 극적이었어요. 제가 지도자를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그런 대회를 또 언제 치러볼 수 있을지 궁금해요.”

더 큰 꿈을 꾸다
호남대를 지나 중랑에 안착한 성한수 감독은 이제 더 큰 꿈을 꾼다. “풍파가 많아서 그런지 다들 저를 ‘풍운아’라고 하시더라고요. 고 3때 있었던 그 사건도 그렇고, 프로 생활하면서 무릎 수술도 많이 하는 등 이런저런 시련이 많았죠. 그래도 그걸 빼면 별 탈 없이 잘 보낸 것 같아요.”

시간이 갈수록 팀도, 자신도 성장해가는 걸 느끼고 싶다. “우선 내년 K3리그 어드밴스에서 다른 팀들과 대등한 경기를 하고 싶어요. 다시 K3리그 베이직으로 내려오는 일은 없도록 해야죠. 내실을 잘 다져서 좋은팀을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다음에는 저도 꿈이 있기에, 프로팀 지도자에 도전해보고 싶네요.”

중랑은 성한수 감독에게 있어 자신감을 안겨 준 선물 같은 존재다. “매번 경기장을 찾아오시는 동네 어르신들이 계세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경기를 보러 와주시는 고마운 분들이죠. 한 달 전부터는 이분들이 주머니에 캔커피 같은 음료수를 넣고 오셔서 저한테 주시더라고요. 너무 고마운 분들이에요. 이렇게 축구를 사랑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저는 더욱 최선을 다해야겠죠. 앞으로 좋은 모습만 보여드리고 싶고, 축구로 인해 이분들을 포함한 모두가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글=안기희
사진=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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