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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대학축구 최장수’ 전주대 정진혁 감독의 꿈

작성일 2017.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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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대학교 정진혁 감독은 올해로 26년째 팀을 이끌고 있다. 전주대학교 정진혁 감독은 올해로 26년째 팀을 이끌고 있다.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하지만 전주대학교 정진혁 감독에게는 예외다.

올해로 26년째다. 1992년부터 그의 이름 앞에는 언제나 ‘전주대학교 축구부 감독’이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한 번도 이 타이틀을 떼어본 적이 없다. 그만큼 애착이 크다. 한 팀을 26년 간 맡아 이끈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확고한 신념과 처절한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8년 만에 진출한 ‘2017 U리그 왕중왕전’ 결승전에서 고려대에 져 준우승했던 날, 정진혁 감독은 눈물을 흘렸다. 26년 간 자신을 도와준 많은 사람들에게 보답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었다. 전주대학교 축구부 감독으로서 이뤄야 할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고마움과 미안함, 자부심으로 살아온 26년이었다. 전주대학교 원클럽맨인 정진혁 감독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 올해 U리그 왕중왕전 결승전 이야기부터 해보자. 잘 싸웠지만 아쉽게 준우승했다. 끝나고 감독님은 눈물도 보였다고?
나름대로 소기의 성과는 거뒀다고 생각한다. 우리 선수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다만 U리그 왕중왕전 결승전을 홈에서 했고 총장님이나 처장님을 비롯한 학교 구성원들이 많은 관심을 갖고 도와줬는데 결과로 보여주진 못한 건 아쉬움이 크다. 우승을 한 후 도와주신 모든 분들을 운동장에서 멋지게 헹가래쳤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 소기의 성과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올해 U리그를 시작하면서 1차 목표를 권역 1위로 잡았다. 그 다음에는 왕중왕전 4강이었다. 3~4년 전부터였던가? 왕중왕전 나갈 때마다 16강 혹은 8강에서 승부차기로 떨어졌다. 올해는 권역 1위를 넘어서 4강 정도는 충분히 해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선수들이 생각 이상으로 더 열심히 해줘 왕중왕전 결승전까지 올랐다.
그런데 운이 따라주지 않아서 우승까지는 못 갔던 것 같다. 8년 만에 진출이었는데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다. ‘운칠기삼(運七技三, 모든 일의 성패는 운에 달려있지 노력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라는 고사성어도 있지 않나? 우리 팀뿐만 아니라 어느 팀이든 대회에 나가면 우승을 목표로 하지만, 누구나 다 우승을 할 수는 없다. 지방대학이지만 전주대는 이번 U리그 왕중왕전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게 바로 소기의 성과다.

- 어떤 감정 때문에 눈물을 흘렸나?
우승을 했더라면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왕중왕전 결승전을 준비하면서 전날에 눈이 많이 내렸다. 결승전을 치러야 할 운동장에 새하얗게 눈이 덮였다. 학교 시설파트 선생님들과 부장님뿐만 아니라 나와 선수들까지 모두 눈을 치우고 라인을 그렸다. 그 작업이 저녁 9시 30분에 끝났다. 선수들은 아마 짜증났을 것이다. 내일 경기인데 왜 우리가 눈을 치우고 있냐고(웃음). 선수들에게 이 눈은 축복의 눈이 될 것이니 축복받는다는 기쁨으로 하자고 다독였다. 대학생활에 있어서 좋은 추억거리가 될 거라고 얘기해줬다. (경기 전날 오전부터 전주 일대에 폭설이 내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들이 이미 제설장비를 동원해 한 차례 눈을 치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내린 눈이 쌓였고, 전주대학교 축구부가 정 감독의 독려 하에 자진해서 눈을 치웠다.)
그리고 결승전을 치렀고, 우리는 결국 졌다. 경기가 끝난 후 총장님과 처장님을 비롯한 학교 직원분들이 내려오셔서 선수들에게 수고했다고 격려해주는데, 나는 그 모습을 조금 떨어져서 봤다. 차마 그 쪽으로 못 가겠더라. 학교 직원 분들이 도움을 정말 많이 주셨는데, 내가 저 자리에 가서 격려를 받아도 될지 의문이었다. 감독으로서의 책임을 다 못했다는 죄책감이었던 것 같다. 내가 전날 선수들에게 눈을 치우라고 한 것도 생각났다. 선수들에게 눈을 치우라고 지시하지 않았더라면 결승전에 임하는 선수들의 컨디션이 좀 더 나았을지도 몰랐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총학생회도 많은 고생을 했다. 결승전이 열리던 날 노란색 목도리 1000개를 준비해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응원을 유도했다. 분위기가 뜨거웠다. 이겼더라면 학생들과 운동장에서 파티를 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결국 못했다.

- 미안한 마음이 컸겠다.
짧은 순간에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선수들과 학교 구성원들에게 미안한 부분이 정말 많았다. 왕중왕전은 1년 내내 치러지는 리그에서 살아남아야 올 수 있는 대회다. 선수들에게는 뜻 깊은 대회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가? 선수들 앞에 설 면목이 없었다. 여러 가지 감정 때문에 순간적으로 눈물을 보였던 것 같다. 전주대학교는 8년 만에 U리그 왕중왕전 결승전에 올랐지만 고려대에 져 준우승했다. 전주대학교는 8년 만에 U리그 왕중왕전 결승전에 올랐지만 고려대에 져 준우승했다.- 경기를 보면서 전주대의 절실함이 고스란히 느껴지더라. 어떻게 동기부여를 했나? (전주대는 전반 11분 선제골을 넣었지만 이후 자책골을 포함 두 골을 내리 실점했다. 그리고 전반 종료 직전 극적인 페널티킥 골을 터뜨리며 균형을 맞추는 데 성공했다.)
8년 만에 왕중왕전 결승전에 올라왔다. 게다가 홈에서 열렸다. 선수들이 정말 고생해서 이뤄낸 성과다. 고려대는 분명 명문팀이다. 하지만 우리가 전혀 위축될 필요는 없었다. 선수들에게도 그렇게 강조했다. 최근 4년 간 이번 왕중왕전을 빼고 고려대와 경기한 적이 없었지만, 그 전에는 전주대가 승률이 더 좋았다. 고려대는 이기형, 조민국, 이천수 등 기라성 같은 멤버들이 포진했지만, 전주대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선배들의 활약을 보고 선수들이 자신감을 얻었으면 했다.

- 그래서 그런가? 올해 U리그에서 전주대의 경기력이 눈에 띈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올해만 봐도 마찬가지다. 전주대는 타 팀에 있어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전주대와 붙는 팀들이 공격적인 축구가 아닌 수비적인 축구를 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매번 왕중왕전에서 승부차기로 아쉽게 졌다. 내용 면에서 밀리지 않았다.
이 정도로 전주대는 강한 팀이다. 우리 스스로가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게다가 홈에서 결승전이 열린다고 해서 긴장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홈에서 열리는 결승전에서 남에게 박수쳐 줄 일이 생긴다면, 이보다 더 슬픈 일은 없을 것이다. 프로팀과 연습경기를 할 때도 체력 열세가 문제였지 경기 내용이 문제는 아니었다. 우리 선수들은 그 정도로 능력 있는 선수들이다. 감독으로서 선수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준 것이 큰 도움이 됐다.

- 자책골은 아쉬운 부분이다. (전주대는 1-0으로 앞선 전반 30분 자책골을 기록했고, 2-2로 팽팽하게 맞선 후반 44분 고려대 신재원의 헤더가 전주대 수비수 이시영의 몸을 맞고 굴절되면서 결국 2-3으로 패했다. 신재원의 골로 기록됐지만 자책골이나 마찬가지였다.)
축구의 매력이라는 게 그런 거다. 이 또한 하늘의 뜻이겠지. 결승전이 끝난 이후 지인들이 ‘전주대가 네 골(자책골 포함)을 넣었는데 왜 우승컵은 고려대가 가져 가냐’며 농담으로 위로해주더라. 지나고 나서 보니 우승한 고려대보다 준우승한 전주대의 기사가 더 많이 나오는 것 같다. 그걸로 위안 삼아야지. 사실 결과 가지고는 할 말이 없다. 선수들이 자책골을 일부러 넣었을까? 절박함이다. 평소 선수들에게 축구뿐만이 아니라 무슨 일을 하더라도 간절함이 깔려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모처럼 결승에 올라왔고 홈에서 하다 보니 선수들이 우승컵을 들고 싶어 하는 간절함이 컸던 것 같다. 그게 너무 강하다보니 자책골까지 들어갔다(웃음).

- 고려대 분석은 어떻게 했나?
전주대는 경기지도학과 내 축구전공이 있다. 현재 4학년인 학생이 우리 팀의 분석관으로 활동 중이다. 이 친구가 우리 팀에 상주하면서 상대 팀 영상도 찍고, 분석도 한다. 그리고 부분별로 정리해 코칭스태프와 논의도 한다. 숙소 입구에 분석 자료를 붙여놓고 선수들에게 자연스럽게 노출시킨다. 선수들이 분석한 자료를 스스로 숙지할 수 있도록 한다.
보통 고려대를 분석할 때 조영욱을 핵심 선수로 지목한다. 하지만 우리는 조영욱보다 안은산을 더 주목했다. 고려대의 모든 공격은 안은산부터 시작된다고 봤다. 이 선수가 고려대의 핵심이었다. 조영욱은 드리블과 1대 1 능력이 뛰어난 선수이기에 그가 움직이는 자리에 이시영을 준비시켰다. 안은산은 1대 1로 마크하는 대신 활동 범위를 줄이는 방향으로 전략을 짰다.

- 분석이 잘 맞아떨어졌나?
물론 분석이 100퍼센트 맞아떨어질 리가 없다. 축구는 데이터 스포츠가 아니다. 경기 내내 우리는 안은산을 잘 봉쇄했지만 마지막 골이 터지기 직전 2~3커트를 자유롭게 나뒀다. 그게 패인이 됐다. 거기서 많이 휘둘린 것 같다. 경기 전날 고려대를 분석하면서 베스트 11과 교체 선수 투입 시점을 모두 세세하게 의논했고, 교체 선수들에게는 미리 얘기도 했다. 하지만 계획대로 교체 선수를 투입시키지 못했다. 베스트 11으로 나섰던 선수들의 몸 상태가 너무 좋았다. 그래서 조금 더 끌고 가보려고 했고, 그게 결국 90분이 됐다. 뺄 수가 없었다. 11명 선수 모두 간절하게 뛰더라. 교체로 투입되지 못한 선수들에게는 끝나고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 정진혁 감독은 처절한 노력파다. 오로지 하나, 전주대학교 축구부를 위해서다. 정진혁 감독은 처절한 노력파다. 오로지 하나, 전주대학교 축구부를 위해서다.- 올해로 전주대만 26년째다. 그 때만 해도 분석이라는 건 없었을 텐데?
그 때만 하더라도 분석이라는 건 없었다. 무조건 패는(?) 게 전부였지(웃음). 상대팀의 비디오 영상을 찍어서 감독과 코칭스태프들이 보기 시작한 건 아마 10여 년 전이었을 것이다. 요새는 정말 좋아졌다. 장비도 좋아지고 시스템도 좋아졌다. 상대 선수의 특징을 빨리 파악할 수 있다. 물론 지도하기가 편해졌다는 건 아니다. 나는 1989년부터 전주대 지도자를 했지만, 갈수록 어렵다. 축구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공부해야 할 건 더 많아진다. 나만의 색깔을 고집한다고 해서 그게 성립되는 것도 아니다. 스트레스만 받는다.

- 26년 동안 전주대 축구부에서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은?
옛날에는 자갈밭에서 운동했다. 숙소도 여관이었지. 지금은 엄청난 발전을 이뤘다. 캠퍼스 안에 인조 잔디 구장과 천연 잔디 구장을 모두 가지고 있는 곳은 흔치 않다. 전광판도 전자식이다. 게다가 축구부 전용 웨이트 공간과 재활 공간도 우리 학교 안에 있다. 인프라는 어딜 내놔도 빠지지 않을 것이다. 학교 측의 재정 지원이 없었다면? 올해 왕중왕전에서 준우승 근처에도 가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전주대에서 정년퇴직하는 것이 목표다. 전주대는 축구부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대단한 학교다. 말로만 그런 것이 아니다. 26년 간 절실히 느꼈다. 항상 보람을 느낀다. 매번 왕중왕전에서 중간에 고배를 마시더라도 학교는 항상 나를 믿고 후원해준다. 고마운 사람들도 있다. 스승이자 전주대학교 창단 사령탑인 故 최재모 감독은 내게 있어 큰 힘이었다. 전주대의 창단 멤버였던 1985년, 그 분 밑에서 선수 생활을 했고 1989년에 코치가 됐다. 그리고 1992년 9월 1일 자로 감독 승계를 받았다. 최 감독님 밑에서 많이 배웠다. 지금은 정년퇴직하신 임병만 체육학과 교수님도 정말 고마운 분이다. 이런 분들이 없었다면 내가 이 자리에 들어올 수도 없었고,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겠지.

- 결국은 환경의 힘인가?
그렇다. 든든한 백그라운드는 내가 전주대에서 장수할 수 있는 비결이다. 감독 정진혁을 믿어주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큰 탈 없이 온 것 같다. 사실 다른 학교에서 교수 제안도 많이 들어왔지만 다 거절했다. 교수를 할 거면 전주대에서 할 것이다. 풋살 대표팀 감독도 했고, 전주EM이라는 팀을 만들어서 K3리그도 나가봤고, 전주 지역방송에서 축구 해설도 해봤고, 유소년 팀도 운영해봤지만 결국 모두 접었다. 전주대 축구부 감독에만 ‘올인’할 것이다.

- 더 큰 무대에서 제안이 온다고 해도 전주대에 남아있을 것인가?
그런 제안이 올 리가 없지만, 온다고 해도 내 자리는 아닌 것 같다. 나는 처음에 목표했던 대로 전주대에서 정년까지 있을 것이다. 전주대를 대학 축구의 메카로 만들고 정년퇴직할 것이다. 한 자리에 오래 있는 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목표를 설정해놓고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나는 정말 이것저것 배웠다. 욕심이 많았다. 내가 선수 생활을 화려하게 하지 못했기에 더 배움에 집착했다. 사비 들여서 해외로 나가 공부할 정도였다. 심판 생활도 했다. 지금도 나는 심판이라는 직종을 좋아한다. 멋있지 않나? 감독이랑 겸직하면 안 된다고 해서 그만뒀다. 풋살대표팀을 맡은 이유도 마찬가지다. 대한축구협회에서 지도자 자격증을 처음으로 시행하던 해에 바로 자격증도 획득했다. 당시 같이 자격증 따던 동기가 김호 선생님, 김호곤 선생님 등이었다(웃음). 원광대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따면서는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다. 탈모가 올 정도로 심각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대회만 다가오면 머리가 빠진다. 안하던 파마도 해봤다.
이 모든 게 내가 전주대 축구감독으로서 발전하기 위한 과정이다. 빨리 가려고 하면 다친다. 순리대로 가야 한다. 노력하는 자가 결국은 이긴다. 앞서 얘기했지만 내 목표는 전주대를 대학축구의 메카로 만드는 것이다. 전주대학교는 정진혁 감독의 자부심이다. 정년퇴직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은 이유다. 전주대학교는 정진혁 감독의 자부심이다. 정년퇴직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은 이유다.- 끝없는 노력은 가족들의 도움 없이 불가능했을 것 같은데?
아내가 많이 울었다. 다른 걸 하더라도 먹고 사는 데는 지장 없을 거라고, 그만뒀으면 좋겠다고 했다. 가정은 아내가 알아서 다했다. 나는 지금도 가정에서 어디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른다. 박사 공부하는 과정 중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그걸 보면서 아내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 보다. 나중에 알았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아내는 갑상선 암 수술을 두 번 했고 침샘 종양 수술을 했다. 2년 연속 대수술을 두 번 했다.
감독이나 선수들은 집을 많이 비울 수밖에 없는 직업이다. 아내가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고 집안일을 관리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아내의 의견을 따라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의견이 맞는 것 같아도, 나중에 돌이켜보면 아내 의견이 다 맞더라. 아내의 의견을 잘 들어야 가정의 평화도 온다(웃음).

- 애처가인 것 같다.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클 것 같다.
하루는 아내가 이런 말을 하더라. ‘자기는 우리 아이들과 전주대 축구부 선수들 간에 무슨 일이 생기면 선수들 쪽으로 갈거지?’라고. 아내가 수술하기 전까지는, 그 말이 사실이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아내가 있지만 선수들에게는 내가 부모라는 생각이 강했다. 자다가 안 좋은 꿈을 꿔서 일어나면 자동으로 축구부 숙소에 와서 이상이 없는지 살필 정도였다. 나는 1982년에 전주에 정착했지만 아직도 어디에 뭐가 있는지 잘 모른다. 학교, 집, 교회, 지방 경기장이 내가 다니는 곳의 전부다. 그 유명한 한옥마을도 가본 적이 없다. 그래서 항상 아내에게 미안하다. 고맙고 또 고맙다. 일부러 져 주려고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내가 아내에게 져야 가정의 평화가 온다.

- 전주대 감독으로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나는 성적에 신경 쓰는 스타일이 아니다. 전주대에 입학하는 선수들은 좋은 상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감독인 나는 장식장을 예쁘게 만들어 상품을 잘 전시해야 한다. 그래야 소비자들이 예쁘다며 상품을 살 것이다. 최고의 상품이 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주는 게 감독이 할 일이다. 그렇게 상품을 잘 팔게 되면, 나중에 정년퇴직하고 나갔을 때 정말 뿌듯할 것이다. 누구보다도 좋은 상품을 가지고 있는, 빛나는 전주대 축구부를 만들고 싶은 게 꿈이다.
지금은 지역에 구애받는 시대가 아니다. 서울에 있던 지방에 있던 4년제 대학이던 전문대를 다니던 간에 상관없다.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서 상품 가치를 올려놓아야 인정을 받을 수 있고 더 큰 무대로 나갈 수 있다. 실제로 전주대는 과거와 달리 서울에 있는 명문대와 많이 평준화 되어 있다. 내 자부심이다. 정말 좋은 학교에 있어서 행복하다. 앞으로도 계속 최선을 다하고 싶다.

전주=안기희
사진=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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