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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권정혁 “‘가늘고 긴’ 축구인생, 내게는 축복”

작성일 2018.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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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KHT(김희태 축구센터)에서 유소년 골키퍼들을 지도하고 있는 권정혁은 40세였던 지난해 K3리그 베이직 FC의정부 선수로 활약했다. FC KHT(김희태 축구센터)에서 유소년 골키퍼들을 지도하고 있는 권정혁은 40세였던 지난해 K3리그 베이직 FC의정부 선수로 활약했다.좋아하는 일을 오랫동안 할 수 있는 건 축복이다.

권정혁(41, FC의정부) 골키퍼에게 축구는 축복이었다. 프로 16년 경력의 베테랑,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어도 꾸준했다. 그라운드에 있는 매 순간을 사랑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선수 생활 말미인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직까지 몸 상태가 좋아서 지난 시즌에는 FC의정부 유니폼을 입고 K3리그 베이직 무대를 누볐다. 동시에 골키퍼 유망주들을 지도하는 일에도 매진 중이다. 무대가 달라졌지만, 축구가 주는 가치는 한결같기 때문에 매일이 즐겁다. 그가 꿈꾸는 제 2의 축구인생은 어떤 색깔일까?

41살 노장...‘아직도 몸이 좋아요’
2001년 울산 현대에 입단한 권정혁은 포항스틸러스, FC서울, 인천유나이티드 등을 거치며 16년 간 프로 무대에서 뛰었다. 통산 166경기에 출전해 208실점을 기록했다. 인천 시절이었던 2013년에는 85m 최장거리 골(7월 21일 제주-인천전)을 기록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당시 권정혁은 전반 39분 자기 진영에서 길게 공을 찼는데, 이 공은 원바운드된 뒤 제주 골키퍼였던 박준혁의 키를 넘겨 골망을 흔들었다. 이 골은 지금까지도 K리그 역대 최장거리 골 1위로 남아있다. 게다가 한국 골키퍼 최초로 유럽(2009-2010 핀란드 리그) 무대를 경험하기도 했다.

양발을 모두 잘 쓴다. 뛰어난 킥 능력은 덤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축구를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헤더가 너무 무서웠어요. 제가 골키퍼를 하게 된 이유도 헤더를 하기 싫었기 때문이죠. 1990년대까지만 해도 골킥 상황이 오면 골키퍼가 차는 경우도 있었지만, 스위퍼가 주로 찼어요. 킥을 쓸 일도 별로 없었죠. 그런데 프로에 가고 나니 이건 아닌 것 같더라고요. 울산에 가서 킥을 처음 배웠는데, 당시 최인영 골키퍼 코치께서 ‘너 왜 킥을 안 배웠냐’라며 깜짝 놀라실 정도였으니까요.”

“부끄러워서 킥 연습을 정말 많이 했어요. 광주 상무 시절에도 마찬가지였죠. 원래는 오른발만 사용했는데, 광주 상무 시절에 왼발 킥을 집중적으로 연습했어요. 지금도 왼발 킥을 할 때의 폼은 조금 이상한데, 계속 하다 보니 20대 후반이었는데도 점차 킥이 좋아지더라고요. 2013년 85m 최장거리 골을 기록할 당시에는 실점하지 않는 것에만 집중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런 기록은 평생 남더라고요. 가끔 기사에 제 이름이 언급되는 걸 보면 신기해요. 하이라이트 영상에는 제 얼굴 대신 상대 골키퍼 얼굴만 나오더라고요(웃음).

2016년 경남FC를 끝으로 권정혁은 프로 생활을 정리했다. 마흔 살이었던 지난해에는 FC의정부 선수로 K3리그 베이직 무대를 뛰었다. “재작년까지 프로에서 뛰었는데 선수 생활을 바로 그만두기에는 아쉽더라고요. 몸 상태가 좋았거든요. 더 하고 싶었어요.” 은퇴 시점이 다가오는 만큼 선수 생활과 병행하면서 제 2의 인생을 준비하기에는 K3리그만한 무대가 없었다. AFC B급 지도자 자격증과 C급 골키퍼 지도자 자격증을 보유 중인 권정혁은 주중에 FC KHT(김희태 축구센터)에서 중학교, 고등학교 골키퍼 선수들을 지도했고, 주말엔 K3리그 베이직에 출전했다. 물론 개인 운동은 지속적으로 이어갔다.

“에이전트를 통해서 김희태 축구센터와 연결이 됐어요. 서로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할까요? 저는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코치 생활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곳을 원했고, 김희태 이사장님도 제가 멀티로 뛸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이사장님 입장에서는 인건비 절약 효과도 있으니까요(웃음).” 권정혁은 인천 시절에 가장 좋은 활약을 펼쳤다. K리그 최장거리(85m) 골도 이 때 달성했다. 권정혁은 인천 시절에 가장 좋은 활약을 펼쳤다. K리그 최장거리(85m) 골도 이 때 달성했다.요가하는 축구 선수
이전과는 다른 환경이다. “집이 목동인데,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축구센터에서 지내고 있어요. 금요일 일과가 끝나면 집에 가는 식이죠. 사실 이곳(김희태 축구센터는 포천에 있다)은 지금도 굉장히 낯설어요. 아는 사람도 없고요. 축구에 집중하기에는 정말 좋은 환경이죠. 지난해에는 이렇게 목동과 포천을 오가면서 바쁘게 살았던 것 같아요.”

권정혁은 FC의정부에서 플레잉 코치 역할을 한다. 거창한 건 아니다. 모두 권정혁보다는 한참 어린 선수들이기에, 이들의 말에 공감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성인 선수들이라서 많은 말이 필요 없어요. 제가 선배지만, 지시하기 보다는 선수들의 질문에 답해주는 쪽을 택하고 있죠. 보통 리그 경기가 한 번 끝나면, 그 다음 주에 모여서 서로 잘못된 점을 이야기해보자고 해요. 스스로 말해보라고 하면 본인들이 깨닫죠. 제가 말하는 것보다는 선수들에게 발언 기회를 주려고 해요. 저는 그저 이들의 말을 경청하고, 방향성을 잡아주는 일만 하죠.”

K3리그는 권정혁에게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K3리그에 오기 전까지는 수준을 낮게 봤어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과거에는 아마추어 선수들이 많이 뛰었지만, 요즘에는 K3리그에도 프로를 목표로 하는 선수들이 많으니까요. FC의정부가 우승을 다투는 팀은 아니지만, 이 팀에서 뛰는 동안은 꽤 즐거웠어요. 경쟁하는 것도 아니고, 돈에 구애받지도 않고, 그야말로 즐기면서 했으니까요. 프로 시절에는 심적인 부담도 컸고 매일 악몽을 꿨는데 FC의정부에서는 마음 편히 축구를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올 시즌에도 선수로 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권정혁은 다양한 선택지를 놓고 고민 중이라고 했다. “지금 여러 제안을 받고 고민 중입니다. 다른 팀에서 코치로 오라는 요청도 있고, 심지어는 선수로 뛰어달라는 팀도 있어요(웃음). 지난해만큼의 몸 상태는 아니지만 여전히 K3리그에서 뛸 수 있을 정도의 몸 상태는 되는 것 같아 1년 더 선수 생활을 하는 것도 고민 중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운동해서 그런지 지금도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게 재미있어요. 제 나이에 비해서는 체력적으로 건강한 편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마흔이 넘어도 몸 상태가 좋다고 자부할 수 있는 건 꾸준한 관리 덕분이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꾸준히 운동한 효과가 커요. 또 요가를 즐겨 하죠. 요가 덕분에 선수 생활을 오래한 것 같아요. FC서울 시절에 다쳐서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재활만 했었는데(2008년 FC서울 소속이었던 권정혁은 무릎과 발목 부상으로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이 때 처음 요가를 접했어요. 생각보다 잘 맞더라고요. 부상 방지도 되고, 몸이 유연해지니까 회복에도 도움이 됐어요.”

체력적인 요소뿐만이 아니다. 감정 관리도 중요하다. “스트레스를 덜 받으려는 노력도 필요해요. 저는 프로 시절에 이기든 지든 상관없이 바로 집에 갔어요. 경기 결과에 따라 기분도 달라지잖아요. 프로 초창기 시절에는 이기면 선수들과 모여서 뒷풀이도 했는데, 나이를 먹고 나니 이런 습관은 해가 되더라고요. 늦게 자면 컨디션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어요. 생활 패턴은 항상 일정하게 유지해야 해요.” 2015년 AFC C급 지도자 과정에 임하고 있는 권정혁. 그는 자기의 미래에 대해 아직까지 결정된 게 없다고 했다. 2015년 AFC C급 지도자 과정에 임하고 있는 권정혁. 그는 자기의 미래에 대해 아직까지 결정된 게 없다고 했다.미래는 알 수 없지만...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 해가며 쌓아온 프로 16년이다. 권정혁에게는 이 16년이 어떤 의미였을까? “사실 프로 생활을 이렇게 ‘가늘고 길게’할 줄은 몰랐죠. 오래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해요.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살아남는 법을 배워서 나왔어요. 물론 괴로움도 많았죠. 프로 초년 때는 하루에도 천 번씩 그만두고 싶었어요. 방법은 없었죠. 그저 잘 참는 수밖에. 어려웠을 때 운이 좋게도 새로운 팀이 구해졌고, 16년이라는 시간을 쌓아왔어요. 성실한 면을 좋게 봐주셔서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신 것 같아요.”

프로 16년, 산전수전 다 겪어서 무뎌졌음에도 딱 한 가지 아쉬울 법한 건 바로 대표팀이다. 대표팀과는 유독 거리가 멀었던 권정혁이다. “히딩크 감독 시절인 2002년 골드컵에 출전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한 경기도 뛰지 못했거든요. 제가 제일 비중이 없는 선수였어요. 그저 훈련만 따라다니는 선수였거든요. 그래도 히딩크 감독님이 모든 선수를 평등하게 대하는 걸 지켜보면서 많이 배운 것 같아요. 만약 내가 지도자가 된다면 저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사실 그 때는 프로 생활하면서 살아남는 게 먼저였어요. 프로에서 생존을 해야 했기에 대표팀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죠.”

권정혁은 아직 향후 진로를 확실히 결정하지 못한 상태라고 했다. “앞서 언급했지만,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어요. 골키퍼 지도자가 될 수도 있고, 팀을 이끄는 감독이 될 수도 있고요. 또 현재 축구 관련한 사업을 작게 하는 중인데, 이 회사에만 매진하는 쪽으로 갈 수도 있어요. 은퇴하기 5년 전쯤부터 경영 공부를 꾸준히 해왔거든요. 아직까지 무엇을 해야 할지 확실히 결정을 하지 못한 상태예요. 지금까지 그랬듯이 주어진 대로 열심히 살려고 해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친구들이 축구하자고 하면 그렇게 기분이 좋더라고요. 지금도 그 때의 마음가짐으로 그라운드에 나서요. 좋아하는 걸 오랫동안 할 수 있는 건 정말 고마운 일이고, 행운이죠. 앞으로 제 직장은 계속 바뀌겠지만 직업은 단 하나, 축구인 입니다. 어떤 형식으로 일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제게 맞는 일을 끊임없이 찾아가보려고요.”

포천=안기희
사진=대한축구협회, 안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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