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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IT(열정적 끈기)로 사는 남자, 이인성 서울대 감독

작성일 2018.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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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성(36) 서울대학교 축구부 감독의 모바일 메신저 프로필에는 ‘GRIT’라는 단어가 적혀 있다. 심리학자인 엔젤라 더크워스가 쓴 책의 제목인데 ‘열정적 끈기’라는 뜻이다. 이 책은 ‘성공은 재능이 아니라 일을 끝까지 해내는 끈기와 노력에 달렸다’고 강조한다. 이 감독은 ‘열정적 끈기’를 좌우명 삼아 살아가고 있다.

청소년 대표와 상비군 출신으로 재능을 인정 받았던 이인성은 네 차례의 큰 부상으로 일찌감치 선수 생활을 그만 두고 2010년 지도자의 길로 뛰어 들었다. 용인축구센터, 서울대 코치를 거친 그는 2016년 6월 서울대 감독 자리에 올랐다. 당시에는 대학 최연소 감독이었다(현재는 1983년생인 영남대 김현준 감독이 최연소).

그가 서울대 축구부를 맡은 뒤 하나씩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2016년 시즌을 마친 뒤 두 명의 선수를 프로(성남 이건엽, 부천 이정원)에 보냈다. 작년 시즌 후에는 강인엽이 일본 실업리그에 진출했다. 올해에는 2015년 이후 3년 만에 U리그 경기에서 승리를 따냈다. 전문 선수 출신이 6명 밖에 없는 서울대 입장에서는 기적과 같은 일들이 연이어 일어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재능보다는 노력이 만들어낸 결실이다. 이 감독은 “선수 시절에는 스스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 자만한 것도 있었다. 재능만 믿고 게을렀다. 부상이 잦았던 건 불운했지만 그것도 나의 책임이다. 결국 어느 순간 주위를 둘러보니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뒤처져 있더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 재능보다는 열정과 끈기를 더 믿게 됐다”고 했다.

GRIT로 사는 남자, 이인성을 4일 그의 자택이 있는 방배역 인근에서 만나봤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균형 잡힌 몸매의 이 감독은 열정적인 말투로 막힘 없이 질문에 답했다.

- U리그는 휴식기인데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
1,2학년 대학축구대회가 열리고 있는데 우리는 인원수가 부족해 출전하지 못한다. 중국에서 열리는 대학 친선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12일 출국한다. 서울대, 칭화대, 옥스퍼드대, 캠브리지대 축구부가 참가한다. 칭화대 측에서 초청하는 것이라 항공비와 체류비를 지원해주기로 했다. 이제 U리그는 두 경기가 남았고, 8월 열리는 추계대학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 선수 시절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큰 부상을 4번이나 당했다. 고3 때 부상을 당하고 인천대에 가면서 의욕이 많이 꺾였다. 대학 시절은 허송 세월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가장 후회스러운 순간이다. 나중에 일본 실업팀에 입단했지만 오래 뛰지는 못했다. 부상을 이렇게 많이 당했는데도 일본 실업리그에서 나름 인정 받았으니 ‘그래도 내가 재능은 있나’ 라는 생각은 들었다(웃음).
(부양초-풍생중-풍생고를 졸업한 이인성은 성남의 우선 지명을 받았으나 고3 때 무릎 부상으로 수술을 해 입단이 좌절됐다. 인천대에 진학한 이인성은 대학 시절에도 발목과 무릎에 큰 부상을 당하며 선수 생활의 기로에 섰다. 좌절감이 컸던 그는 선수를 그만 두려 했으나 마지막 도전이라는 심정으로 2006년 일본 실업팀 기후FC에 입단했으나 3경기 만에 또다시 무릎 부상을 당하며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마지막으로 도전장을 던진 곳이 일본 실업팀 부리오베카 우라야스였다. 2008년 입단해 두 시즌을 뛰었으며, 리그 최고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 연이은 부상 때문에 좌절감이 컸을 것으로 본다.
최성국, 김두현과 함께 U-16 대표팀에서 뛰었고, 1997년 축구대상 시상식에서 최우수선수상도 받았다. 내가 중등부 최우수선수였는데 당시 초등부 최우수선수가 하대성, 고등부 최우수선수가 이동국이었다. 나름 재능을 인정 받았는데 자꾸 다치니까 ‘왜 나만 다칠까’ 싶었다. 대학교에 가서 축구가 정말 싫어졌다. 주변에서 인천대에 간 나를 보고선 ‘쟤 풍생 10번 아니야? 프로 가는 거 아니었어? 왜 인천대에 갔지? 이제 맛이 갔네’ 라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축구가 더 하기 싫어졌다.

- 일본에서 선수 생활을 마친 뒤 2010년 한국에 귀국해 지도자 공부를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일본 실업팀(부리오베카 우라야스)에서 플레잉코치를 하면서 중학교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때부터 대비는 하고 있었다. 그리고 2010년 한국에 들어왔을 때 당시 서울대 코치를 하다 J리그 사간도스로 옮기신 김희호 코치님 소개로 서울대 코치를 맡게 됐다. 그때 김희호 코치님을 비롯해 백종석 동국대 코치, 주호진 호남대학교 축구학과 교수, 이재홍 피지컬 코치 등 좋은 분들을 만나게 됐다. 그때 우연히 1년 후배 조원희와도 만난 적이 있는데 아직도 그때를 잊지 못한다.

- 조원희와 무슨 일이 있었나.
오랜만에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조원희가 아내와 함께 있었는데 아내에게 나를 ‘예전에 전국 랭킹 1,2위를 다투던 선수’라고 소개했다. 그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으면서도 이상했다. 한때 나는 좋은 선수였는데 지금은 내가 제일 뒤처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골똘히 생각해봤다. ‘10년 후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때도 나는 한때 경쟁을 했던 다른 사람들보다 뒤처져 있을까?’ 그때 고심 끝에 10년 안에 이뤄낼 3가지 목표를 세웠다. 대학 팀 감독, 해설자, 강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었다. 그래도 열심히 노력한 끝에 모두 이루게 됐다.
(이인성은 2014년에 호서대학교 체육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아 유소년 선수들을 대상으로 종종 특강을 하고 있다. 또한 그해 SPOTV 해설위원으로 데뷔했다. 2016년 6월에는 서울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자신이 세운 3가지 목표를 조기 달성했다)

- 2015년에는 스코틀랜드에서 UEFA B급 자격증을 땄다고 들었다. 스코틀랜드로 날아가게 된 계기는?
아는 후배가 같이 가자고 해서 가게 됐다. 사실 나는 안 간다고 했다. 이미 KFA A급 자격증도 있기 때문에 자격증은 필요가 없었다(UEFA B 자격증은 KFA B 자격증에 해당한다). 후배가 끈질기게 설득해서 경험을 더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축구 종가 인근의 스코틀랜드에 가서 직접 가르치면서 시험을 보는 게 매력적이었다. 한국과 일본 무대를 경험했는데 스코틀랜드의 축구도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참가했는데 현지 강사로부터 좋은 평가도 받아 뿌듯했다.

- 지도자로 성공하려면 서울대 같은 팀에 있으면 안 된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왜 서울대를 선택했나?
서울대 코치를 하다가 2013년에 용인축구센터 코치로 잠깐 갔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재미 있었고, 성적도 냈다. 그런데 2015년에 다시 서울대 코치직 제의를 받았다. 제의를 받았을 때 고민이 많았다. 왜냐면 질문하신 것처럼 지도자로 성공하려면 서울대 같은 팀에 있으면 안 된다고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전하고 싶었다. 약팀을 성장시키는 게 진짜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 강신우 감독이 일신상의 이유로 그만 두면서 2016년 중반에 감독을 맡았다. 코치로 서울대에 있었기 때문에 적응은 쉬웠겠지만 코치와 감독은 하는 일이 많이 다르다.
코치로서는 선수 개개인의 기술 향상에 치중했다면 감독이 되고 나서는 선수 조합과 경기의 퀄리티를 높이는데 집중해야 했다. 코치는 훈련의 완성도, 감독은 경기의 완성도를 높인다고 보면 된다. 감독으로서 매년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 올 시즌 1승을 거두게 된 것도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감독이 되면서 매주 화요일에 수준 있는 고등학교 팀과 연습경기를 시작했다. 화요일 연습경기, 금요일 U리그 체제로 준비하니까 예전에 비해 경기력이 한층 좋아졌다. 연습경기를 하면서 더 많은 선수에게 기회를 줄 수 있어 팀을 운영하기도 좋았다.

- 서울대는 리그에서 1승도 하기 어려운 팀이다. 게다가 비선출이 대부분이라 동기부여하는 게 다른 팀보다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는 엄연히 U리그에 출전하는 팀이다. 동아리 축구가 아니다. 선수들에게 ‘설렁설렁 운동할 거면 우리는 그냥 U리그에서 나와서 동아리 축구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때문에 리그의 수준이 떨어진다는 말이 나와선 곤란하지 않나. ‘U리그에 출전하는 이상 어느 정도 실력을 선보여야 한다. 그러려면 너희가 어느 정도 훈련 스케줄을 따라와줘야 한다’ 라고 설득한다. 그게 U리그에 출전하는 우리가 가져야 할 책임감이다.
그리고 서울대 학생으로서 자부심을 가지라고 강조한다. 서울대라는 이름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선수들이 경기력은 떨어지지만 매너, 헌신 등의 가치를 축구를 통해 체득한다면 좋을 것 같다.

- 작년에 프로로 선수를 보냈다(이건엽 성남, 이정원 부천). 공부하는 선수도 프로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 사례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둘 다 팀을 나왔다. 이건엽은 독립구단 TNT FC에서 재기를 노리고, 이정원은 대학원 공부를 준비하고 있다. 올해 초에는 강인엽이 일본 실업리그에 진출했다. 그래도 내가 온 이후로 매년 한두 명이라도 취업을 시키고 있다. 현재 전문 선수 출신이 우리 팀에 6명 있는데 이 친구들이 ‘열심히 하면 우리도 좋은 팀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 선수들이 체육교육학과에 속해 있어 교생 실습으로 훈련이나 경기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5월 4일 예원예술대와의 홈 경기를 이겼는데 교생 실습으로 선수들이 빠진 상태에서 이긴 것이었다. 경기를 앞두고 팀 미팅할 때 ‘이번 달이 교생 실습으로 힘든 시기지만 우리가 가장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절대 약해지지 말자’고 말했다. 결국 가장 힘든 시기에 1승을 해냈고, 이후 경기에서도 무승부를 하면서 좋은 흐름을 이어갔다.

- 3년 만에 승리를 거뒀을 때 분위기는 어땠나.
아이들이 경기 끝나고 나에게 ‘선생님, 1승을 했으니 헹가래 한 번 받으세요. 저희가 빨리 이겨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라고 하는데 코끝이 찡했다. 우승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 팀에는 정말 간절한 1승이었다. 저녁에 선수, 학부모들과 파티도 했다. 그동안 우리는 리그에서 고생을 했다. 보이지 않는 차별도 있었다. 그런 걸 이겨내고 3년 만에 승리하니까 감회가 남달랐다.

- 올해 3승이 목표라고 밝혔는데 가능할 것으로 보는가. U리그 두 경기(vs 예원예술대,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를 남겨뒀다.
내가 선수들에게 ‘감독으로 3승을 하면 서울대 나갈 거야’ 라고 농담처럼 말한 적이 있다. 그래서 선수들이 3승이 목표라고 이야기를 한 것 같다. 남은 U리그 경기를 잘 치르고, 8월 태백에서 열리는 추계대회에서는 예선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면 진짜 팀을 나가야 할 지도 모르겠다(웃음).

- 서울대 감독으로서 목표는 무엇인가.
언제까지 있을지 모르겠지만 매년 성장하는 팀을 만들고 싶다. ‘우리를 알아주세요’ 라고 바라기보다 잘 하는 모습을 보여서 관심을 가지게끔 만들고 싶다. 이 곳에서의 경험이 앞으로의 지도자 생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축구를 안 하던 친구들을 가르친 것이니 여기에 있다가 다른 팀에 가면 훨씬 수월하지 않을까 싶다.

- 장기적인 계획은 무엇인가.
집에 있는 작전판에 10년 후 하고 싶은 일들을 또 이것저것 써봤다. 40대에 프로 지도자가 되고, 더 나이가 들면 지도자강사를 해보고 싶다. 2010년에 생각했던 3가지 목표를 10년도 안 돼서 이뤄냈다. 새로운 목표를 향해 또 도전하겠다.

글 = 오명철
사진 = 대한축구협회, 오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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