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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서울대생이 쓴 서울대 축구부 동행기

작성일 2018.05.17

조회수 7492
지난 4일 올 시즌 U리그에서 첫 승리를 거둔 서울대 축구부는 11일 경기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이하 문예대)와의 경기에서 창단 후 첫 2연승에 도전했다. 서울대는 경기 막판까지 1-0으로 앞서고 있어 최초의 2연승을 눈앞에 뒀으나 후반 추가시간 상대에게 통한의 동점골을 허용했다.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는 의미 있는 도전에 나선 서울대 축구부를 동행 취재했다. 서울대에 재학 중인 필자는 원정 경기에 나서는 선수단 차량에 동승하면서부터 축구부 선수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낱낱이 취재했다. 이들의 도전을 시간 순으로 정리했다. # 오전 10시 30분 - 경기장으로 출발

오후 1시에 원정 경기를 치러야 하는 서울대 축구부는 오전 10시 30분 대운동장에 집합했다. 축구부실에서 짐을 꺼내고 버스에 올랐다. 선수단은 미니 버스와 승합차에 나눠 타고 경기가 열리는 수원 영흥체육공원으로 향했다.

“기름이 없다고?”

승합차의 운전대를 잡은 17학번 정회석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원래 이 차량은 체육교육과 차량이기 때문에 체육교육과 조교가 운전한다. 하지만 조교가 이날 교생 실습으로 학교에 없어서 이날 센터백으로 선발 출전이 예고된 정회석이 운전대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기름이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챈 정회석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다행히 정회석은 기적적으로 교통 체증을 뚫고 낙성대역 부근 주유소에 도착했다. 기름을 5만원 어치 넣고, 11시가 다 돼서야 고속도로에 오를 수 있었다.

주장 류진엽은 컨디션 조절을 위해 이내 잠들었다. 뒷자리에 앉은 미드필더 유길헌은 급하게 김밥을 먹으며 끼니를 해결했다. 이날 오전 9시 영어 강의를 듣고 차량에 오른 유길헌은 피곤함을 호소했으나 경기 전에는 잠을 자지 않는다는 자신만의 철칙을 지키며 원정길을 버텨냈다. # 낮 12시 10분 - 경기장 도착

“쌤, 도착했는데 어디로 가야 돼요?”

가까스로 숲 속에 위치한 주차장 빈 곳에 차를 주차한 뒤 주장 류진엽이 이인성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마친 류진엽은 한참을 주변을 둘러보다 “여기다. 가자!”를 외친 뒤 숲 속으로 뛰어갔다. 킥오프 50분 전이니 1분 1초가 급했다. 운동장은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수원대와 국제사이버대의 경기가 펼쳐지고 있던 경기장에는 미니 버스를 타고 온 선수들이 먼저 몸을 풀고 있었다. # 낮 12시 35분 - 교생 선수들 차출 불가 통보

“네? 나올 수 없다고요?”

휴대전화를 든 이인성 감독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교생 실습을 나가 있는 선수 3명에 대한 차출이 불가하다는 통보 전화였다.

“못 온다고 하네요. 어쩔 수 없죠. 어린 선수들을 믿을 수밖에...”

실제로 이날 오지 못하는 오건호 등 3명의 선수는 전력의 핵심이다. 아직 1,2학년들이 경기에 뛰기에는 힘든 리그 초반이기 때문에 이들의 부재는 큰 위기였다. 하지만 이인성 감독은 어린 선수들이 갖고 있는 잠재력을 믿고 과감하게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매 경기 출전 선수 명단에 변화가 많은 서울대 축구부는 이렇듯 교생 실습을 하는 5월이 제일 힘든 달이다. # 오후 1시 - 경기 시작

승합차에 탄 선수들은 경기 시작 50분 전에 도착했고, 주전급 3명은 교생실습으로 나서지 못해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그러나 선발 출전한 선수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집중력을 발휘했다.

오히려 서울대가 분위기를 주도했다. 전반 2분 만에 유길헌의 슈팅으로 포문을 연 서울대는 끈끈한 조직력으로 상대 공격의 예봉을 차단했다. 이인성 감독은 계속 일어나서 선수들에게 소리쳐가며 지휘했다. # 오후 1시 25분 - 1명 퇴장

잘 싸우고 있던 서울대에게 악재가 터졌다. 퇴장이 발생했다. 상대 선수와 거친 신경전으로 이미 경고를 한 차례 받은 신우진은 2분 뒤 무리한 태클로 추가 경고를 받았다. 억울한 듯 운동장을 빠져나오는 신우진의 어깨는 축 늘어져있었다.

“아 말도 안 돼. 내가 퇴장이라니”

스스로 자책하는 신우진의 표정은 쉽게 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눈은 운동장을 향해 있었다. 수적 열세로 어려운 경기를 해야 할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과 자신의 공백을 동료들이 잘 메워주길 바라는 마음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 오후 1시 45분 - 하프타임

더운 날씨 속에서 분투한 서울대는 하프타임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이 때 이인성 감독이 작전판을 들고 나섰다. 선수 개개인과 이야기를 마친 이인성 감독은 수적 열세에 따른 맞춤형 수비 전략을 선수들에게 지시했다.

“달라진 건 없어. 아직 0-0이야”

선수들은 이내 기운을 찾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일어섰다. 수평적인 분위기에서 미드필더 유길헌이 소강무에게 세밀한 움직임을 주문하고, 수비진들도 끊임없이 대화하며 후반전을 준비했다. 하프타임이 끝나고 선수들은 다 같이 외쳤다.

“우리가 잡는다” # 오후 2시 23분 - 서울대의 선제골

이인성 감독의 주문을 받은 선수들은 더욱 강한 정신력으로 상대에 맞섰다. 몸을 던져가며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던 후반 26분. 모처럼 맞은 공격 기회에서 소강무의 선제골이 터졌다. 류진엽이 헤딩으로 떨군 볼을 그대로 공격수 소강무가 발리슛으로 연결해 골망을 갈랐다. 선수들은 마치 승리라도 거둔 마냥 벤치에서 서로를 얼싸안았다. 멀리서 아들들을 바라보던 학부모들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선제골의 기쁨을 누렸다. # 오후 2시 46분 - 통한의 동점골, 그라운드에 주저앉다

선제골 이후 종료까지 남은 시간은 단 20분. 선수들은 남아있는 체력을 모두 짜내며 상대 공격을 막아냈다. 이 과정에서 조혁주도 부상으로 들것에 실려 나갔다. 사상 첫 2연승을 목전에 둔 이인성 감독은 잇따라 서울대의 파울을 선언하는 심판이 야속하다는 표정이었다.

결국 경기 종료 직전, 문예대가 프리킥 기회를 맞았다. 서울대 수비진이 제대로 걷어내지 못한 볼은 문예대에 넘어갔다. 문예대 박준녕이 중거리슛을 날렸고 결국 서울대의 골망을 흔들었다. 그리고 경기는 끝났다.

버저비터 동점골을 내준 후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쓰러졌다. 부상으로 들것에 실려나온 공격수 조혁주도, 전반전 퇴장을 당한 수비수 신우진도, 겉옷을 벗고 승리를 위해 강인한 정신력을 주문하던 이인성 감독도 모두 주저앉았다. 찬물을 끼얹은 듯 서울대 벤치는 조용해졌고, 문예대의 함성은 적막한 그라운드에 메아리쳤다. # 오후 3시 - 우리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역사적인 첫 2연승 도전이 좌절됐지만 학부모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자녀의 경기를 보러 오기 위해 주중 낮 시간대임에도 먼 길을 온 만큼 아쉬움도 클 터이지만 자녀들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인성 감독은 선수들을 불러 모아 한명 한명을 위로한 뒤 이렇게 말했다.

“한 명 퇴장 당했고, 전력 공백도 있었어. 잘 싸운 너희들은 최고다. 잘했어. 자책하지 말자.”

이날 무승부로 리그 1승 1무 5패를 기록한 서울대는 8개 팀 중 7위를 기록했다. 1-1 스코어만 보면 승부를 가리지 못한 여느 경기와도 같아 보이지만 서울대 선수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사상 첫 2연승 도전이 좌절됐기에 마치 진 것 같은 아쉬움을 느꼈다.

서울대 축구부는 승리보다 패배가 익숙한 팀이다. 그러나 올해는 뭔가 다르다. 서울대는 올 시즌을 마칠 때쯤 유쾌한 반란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글,사진 = 박재웅 KFA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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